안정환·이혜원 부부는 한국판 ‘베컴·빅토리아’ 커플이라 할 만 하다. 금실 좋기로 따져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잉꼬 부부다. 자타가 공인하는 선남선녀 사이에서 딸 리원이가 태어난 지도 벌써 17개월이 됐다. 꽃처럼 예쁜 세 식구의 중심에서 아내로, 엄마로 야무진 일상을 꾸리는 프로 주부 이혜원.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똑 소리가 난다.

참 단아한 상이다. 뚜렷한 이목구비만 보면 얼핏 서구적인 외모지만 동양미도 겸비했다. 뭇 여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반지 키스의 주인공 이혜원(25). 아기 엄마가 된 그녀는 전보다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앳되고 새초롬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아기 엄마 특유의 상냥함이 이내 얼굴 전체로 번졌다. 밖에 나가면 대학생이라고 해도 쉬 믿을 외모. 리원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가면 가장 젊은 엄마지만 “엄마들 사이에선 아이 개월 수가 곧 엄마 나이”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다. 17개월 된 딸 리원이를 한 팔에 덥석 안은 모습에 하나 어색함이 없다.

안정환(29) 선수가 지난 7월 프랑스 FC메츠에 입단하면서 세 식구의 프랑스 생활이 시작됐다. 어느새 넉 달째에 접어든 그곳 생활은 다행히 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이다. 아빠, 엄마를 반씩 닮은 리원이는 누가 안정환 딸 아니랄까 봐 벌써부터 공놀이를 제일 좋아한단다. 그러고 보니 앞짱구 뒷짱구로 예쁜 두상이 공 모양을 똑 닮았다.

정원을 뛰노는 딸과 부드러운 눈빛으로 딸을 지켜보는 젊고 아름다운 엄마, 그리고 곁에서 두 모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머니까지… 눈부신 햇살과 산뜻한 바람 속에서 세 여자의 모습이 마치 조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 같던 가을날 오후였다.

사랑스럽고 야무진 5년 차 주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란 말, 사실이던데요”

인터뷰 중간에 휴대폰 벨이 울린다. 프랑스에 있는 남편 안정환이다. 조금 전까지 리원이를 부르던 상냥한 목소리가 지구 저편에서 이제 막 잠 깬 남편을 달랜다. 지난 10월 12일 이란과의 A매치 후 안정환 선수는 소속팀 경기를 위해 곧장 프랑스로 날아간 터였다. 11월에 있을 경기를 위해 남편이 다시 들어올 때까지 아내와 딸은 서울에 남기로 했다. 아쉬운 듯 짧은 전화 통화를 마친 혜원씨가 말을 이었다.

“우리 부부는 정말 대화를 많이 나눠요. 전화 통화도 하루 평균 30통 정도 해요.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결혼하면 남자들이 변한다던데, 남편은 결혼 후 더 잘해줘요. 남편 말이, 전에는 여자친구였는데 이제는 아내가 됐으니 더 잘해주는 것이 당연하대요. 그동안 서로 많이 익숙해졌지만 저희는 그럴수록 더 예의를 갖추려고 애써요.”

결혼 초부터 외국 생활을 시작한 탓에 두 사람은 단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서로 뭐든지 터놓고 대화를 했다.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두 사람은 여전하다. 평소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못다 한 이야기는 쪽지나 편지로 주고받을 정도로 로맨틱하다. 남편은 종종 몇 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돌돌 말아 리본으로 예쁘게 장식한 다음 탁자 위에 몰래 올려놓고 나간단다. 운동선수들은 보통 무뚝뚝하다던데 여간 자상한 모습이 아니다.

“처음 연애할 때는 오빠가 너무 내성적이어서 과연 이 사람하고 계속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자상하게 변하더군요. 확실히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웃음) 실은 남편이 원래 속정이 깊거든요.”

혜원씨 역시 남편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 네 살 아래 어린 신부였기에 마냥 어린애 같을 거라 생각하던 안정환 선수에게 그런 혜원씨의 모습은 새록새록 새로운 면모였다고 한다. 귀여운 여동생 같다가도 때론 누나처럼 어른스러운 그녀에게 안정환 선수는 “항상 의지가 된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편지에서나 쓸 법한 표현인데도 일상에서 불쑥불쑥 그런 말을 건네는 의외의 면에 혜원씨 자신도 놀랐을 정도. 솔직하고 진지한 애정 표현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부부싸움 날 일도 없다고 한다.

주부 5년 차. 운동선수인 남편을 위해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맞춘다. 운동선수는 눈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집 안 가구도 눈을 편안하게 하는 그린 계열로 통일했다. 음식은 물론 손수 만들어준다. 외국 생활을 할 때도 식사는 대부분 한식으로 요리했다. 특히 구이요리를 많이 하는데, 굽기는 삶기 다음으로 칼로리가 낮은 조리법이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 남편에게 적당한 요리법이라고 한다.

“아기가 없을 때는 외국 생활이 외롭기도 했죠. 그래서 일부러 요리에 취미를 붙였구요. 이젠 리원이와 지내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라요. 얘가 얼마나 애교가 많은지 아빠를 아주 살살 녹여요. 아빠 무릎에 누워 아빠를 올려다보면서 ‘아빠~’ 하고 콧소리를 내면 남편은 아주 쓰러지죠. 갓 결혼했을 땐, 우리 둘이 행복한데 굳이 아기 낳을 필요 있냐면서 아기 낳지 말자고 한 사람인데… 그래도 남편은 딸보단 제가 우선이래요. 자식은 어차피 자식이고, 나중에 남는 건 저랑 남편 둘뿐이라면서요.(웃음)”

17개월 된 딸 리원이의 멋쟁이 엄마

“지금은 무엇보다 육아에 신경 써야 할 시기예요”

또래 아이보다 유난히 키가 큰 리원이는 어떻게 보면 엄마가 보이고, 어떻게 보면 아빠 모습이 나온다. 피부도 하얗고 눈도 커서 어디서든 한눈에 쏙 들어오는 예쁜 아기다.

“우린 ‘여자 안정환’이라고 말해요.(웃음) 처음 태어났을 때는 모두 아빠 닮았다고만 하더니 크면서 조금씩 제 얼굴이 나오는 것 같아요.”

리원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빠르다고 한다. 누군가 뭐라고 말을 하면 꽤 주의 깊게 듣는 것처럼 한동안 시선을 맞추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귀엽다. 혜원씨는 평소 리원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물론 엄마의 말 뜻을 정확하게는 알아듣지 못해도 그 어감만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느낀다. 엄마가 뭐라고 말하면 리원이도 무슨 이야긴가 싶어 주의를 기울이며 듣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목욕을 시킬 때도 옷을 입힐 때도 엄마가 항상 뭔가를 말하니까 그만큼 말이 빨라진 것이 아닌가 싶단다. 더구나 리원이와 엄마 사이에는 벌써부터 뭔가 통하는 게 있다. 리원이가 뭐라고 알아듣기 힘든 말로 원하는 것을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것을 가져다 주지만 엄마는 바로 알아듣고 리원이가 원하는 것을 준다. 그럴 때마다 초보 엄마의 놀라움은 곧잘 감동으로 바뀌곤 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제 평소 성격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전 처음에는 사람을 가리지만 일단 친해지면 항상 대화를 통해서 마음을 터놓고 친분을 쌓거든요. 남편, 친구, 리원이에게도 그렇고… 그게 사람을 대하는 제 방식이에요.”

엄마가 되고 나서 그녀에게도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매사에 전보다 여유가 생기고 사물을 보는 시선도 좀더 따뜻해졌다. 화 나는 일이 있어도 바로 화를 내기보다 혼자서 조용히 마음을 다스릴 줄 알게 됐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낯선 사람과는 말도 잘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유치원에서 만나는 낯선 엄마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리원이가 공을 너무 좋아해요. 프랑스 집에서도 집 앞 잔디에서 아빠랑 공 차고 놀아요. 경기장에 가끔 데리고 가면 관중의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눈만 깜빡거리면서 얌전히 앉아 있어요. 그 어린아이가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아마도 임신했을 때 제가 경기장에 자주 다녀서 그런가 봐요. 태교라는 게 정말 영향이 큰 것 같아요. 태교할 때 찬송가를 많이 들려줬는데 지금도 그때 들려준 찬송가를 들려주면 딴 짓 하다가도 고개를 들고 관심을 보이는 거 있죠.”

첫딸이라 마냥 귀하지만 혜원씨는 악역도 마다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하면 버릇이 나빠지기 쉽다는 것. 그래서 부모 중 한 사람은 엄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혜원씨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아빠에게는 한없이 애교쟁이인 리원이가 엄마는 좀 무서워하는 편이라고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육아예요. 제 성격이 원래 미리미리 준비하는 성격이거든요. 아이 키울 때도 그런 성격이 나타나요. 각종 육아 관련 서적을 다 섭렵하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웹서핑을 하며 정보를 꼼꼼히 챙기는 편이에요. 학교 가기 전날 밤 가방 다 싸놓고 학교갈 준비 다 해놓는 아이 있잖아요. 제가 딱 그래요.”

미래 대비하는 똑 소리 나는 사업가

“남편이 은퇴 걱정 없이 운동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어요”

혜원씨는 요즘 ‘토브’라는 퓨전 한정식 레스토랑을 친정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올 1월 의왕시 백운호수가에 1호점을, 지난 7월 청담동에 2호점을 냈다. ‘토브’는 히브리어로 ‘좋다’는 뜻으로 영어의 ‘good’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한다. 가정집을 개조한 레스토랑이라 야외 정원이 그대로 남아 있고 세련된 벨벳 소재 가구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음식점을 낸 것도 미리 미리 준비하는 저의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미래를 위한 준비 차원이죠. 사실 운동선수는 운동 그만 두면 말 그대로 실업자가 되는 셈이잖아요.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해오던 일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 남편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편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이런 사업을 구상했어요. 남편에게 제가 말하죠. 오빠는 운동 그만둬도 여기 사장이니까 걱정할 것 하나 없다고. 그러니 마음 편히 운동하라구요.”

혜원씨가 그런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작년 몰디브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고 한다. 남편이 아무것도 못한 채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내로서 그녀가 느낀 심적 고통은 상당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자라온 그녀로서는 살면서 그때처럼 힘든 때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소속팀이 있던 일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침대 옆에 의자 하나 놓을 정도의 공간만 있는 열악한 시설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다 한식으로 만들어서 병원으로 싸들고 다니면서 밤이면 침대 옆 좁은 공간에서 매일 남편과 함께 잤다. 미안해하는 남편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겉으로는 항상 밝게 웃었지만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때 그 좁은 병실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아, 이렇게 남편이 다치고 나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남편에게 좀더 힘이 돼주고 싶었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구요.”

평소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레스토랑 사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겸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현지인에게 직접 배운 요리 솜씨도 한몫했다. 일반에 없는 음식을 개발하려고 자신의 요리 솜씨를 동원해 레시피를 연구하고 꼼꼼히 기록하며 메뉴를 개발한 것. 그렇게 해서 탄생한 요플레 크림새우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토브만의 메뉴다.

“시집갈 때만 해도 밥밖에 할 줄 몰랐어요. 친정 엄마가 요리 솜씨가 좋으시기 때문에 남편은 결혼 전부터 늘 그랬죠. 다른 건 몰라도 된장찌개 끓이는 법 하나는 꼭 배워 오라고요. 이제는 제가 끓여도 그 맛이 나온대요.”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손경현 - 대한민국 새신문!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