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이탈리아 AC 페루쟈 구단은 우리나라와 일본과 매우 친숙한 구단이 되었다.
98년 월드컵 직후, 페루쟈 구단은 일본의 공격형 미드필더 나카타 히데토시를 영입하여 큰 재미를 봤다.
나카타는 개막전부터 돌풍을 일으켰고, 페루쟈의 선전에 큰 공을 세웠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페루쟈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넘쳐났으며, 결국 페루쟈는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등 아시아 지역 투자로 유럽 축구계에 새로운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이후의 대상은 우리나라의 안정환이었다.
하지만 안정환으로 페루쟈 구단은 특별한 이익을 올리지 못했다. 이탈리아 문화 적응과 통역 문제로 안정환은 현지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시즌 막판에야 팀 전력에 도움을 주면서 활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음 시즌을 앞두고는 페루쟈 구단과 부산 구단간의 임대 계약 문제로 인해 시즌 직전에야 선수 등록과 함께 팀에 합류했고, 결국 컨디션 회복이 더뎌지면서 출장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하기도 했다.
게다가 안정환은 구단 측에 `이익`을 남겨주지 못하면서 `한국은 축구 사업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라는 전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를 찾는 이탈리아의 한국인들도 없었고, 한국의 방송사에 중계권을 팔지도 못했다. 그리고 월드컵 이탈리아전 이후 가우치 구단주는 안정환에게 `망언`을 퍼부었고, 그의 아들이자 페루쟈 구단의 실세였던 알레산드로 가우치가 대신 사과하며 뒷일을 수습했지만, 안정환은 팀 복귀를 거부하면서 인연은 마무리되기도 했다.
나카타 이후 아시아권 선수, 특히 극동 아시아권 선수가 이탈리아에서 성공한 사례는 나오고 있지 않다. 나카무라만이 레지나에서 평균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다 지난 시즌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그나마 성공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 일본 선수들이 이탈리아 무대를 두드렸지만, 나카타 만큼 활약을 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팀에 `나카타 만큼`의 경제적인 이익을 안겨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중소 규모의 구단들은 계속 극동 아시아 시장을 관찰하고 있다. 극동 아시아의 축구 열기, 경제력, 그리고 미디어의 위력 등을 알고 `황금알`을 꾸준하게 찾고 있는 것이다.
과거 페루쟈 구단의 경우, 구단주인 루치아노 가우치는 이탈리아 축구계에서 `정신병자` 내기는 `코미디언` 취급을 받을 정도로 무시 받는 대상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사무실과 저택에 약 8개 가량의 위성 수신 시스템을 설치하고 극동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의 황금알을 찾으려는 집념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을 제외하고 일본과 중국의 경우 관광객, 중계권료, 그리고 유니폼 판매와 입장수입 등에서 이들 극동 시장은 분명히 매력이 넘치고 잠재능력이 큰 대상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세리에 A에 갓 복귀한 토리노 구단이 페루쟈의 방법을 계승하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지금 토리노에는 일본 국가대표 공격수 마사시 오구로가 소속되어 있다. 오구로는 현재 2경기에 교체 투입되었고, 아직까지는 큰 인상을 이탈리아 축구계에 남기고 있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스테파노 피오레, 시모네 바로네, 주세페 판카로 등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활약한 경험과 메이저 대회 경험까지 있는 선수들이 대거 합류한 토리노는 현재 공격력의 부족으로 인해 공격수가 아쉬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팀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오구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더구나 오구로는 지난 시즌까지는 프랑스 2부 리그인 그레노블에서 뛰었고, 특별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토리노의 카이로 회장은 견해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오구로를 `마케팅용 선수`로 활용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를 언론에 드러내고 있다. 간간히 "그는 팀에 잘 적응하고 있다. 곧 그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그의 영입으로 일본 같은 강국과 교류하는 것에서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라는 발언을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카이로 회장은 계속 아시아 시장을 개척할 것을 공언했다. 일본, 중국(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언급하지 않았다) 등의 아시아 시장과 중미, 아프리카의 숨은 진주를 찾아내 팀에 합류시키겠다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아시아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축구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시장의 경제력과 구매력을 생각하면 극동 아시아만큼 매력이 넘치는 시장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실 토리노는 시즌 전, 오구로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김진규, 박주영에게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1년에 1명만 영입할 수 있는 비 유럽국적 용병으로 그는 오구로를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김진규의 경우 2005 네덜란드 U-20 세계선수권에서 이탈리아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수비수라는 점에서, 그리고 박주영의 경우 당시 U-20 세계선수권과 2006 월드컵에서 연이어 혹평을 받았던 것이 오구로를 선택한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오구로의 경우 팀 동료들에 비해서 특출난 점이 딱히 없다. 뚜렷한 개성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골잡이들 중 결정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체격조건이나 기술, 슈팅력, 활동 공간 등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토리노의 공격진 구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대부분 세리에 B에서 활동하던, 큰 무대 경험이 딱히 없는 자원들이 모인 것이 토리노의 공격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 우리의 축구 시장이 컸으면 토리노에는 오구로가 아닌 우리나라의 공격수가 맹활약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생각했을 때, 안정환, 이동국, 조재진(가나다 순) 등은 극동 아시아 뿐 아니라 모든 아시아권에서도 가장 뛰어난 공격자원이기도 하다. 최소한 일본의 골잡이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우리의 축구 시장과 구매력이 크지 못한 탓인지, 이런 기회들은 계속 일본이나 중국 쪽으로 향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시장의 경우 `금전적 측면에서의 완벽한 실패`가 페루쟈, 페예노르트, PSV 아인트호벤 등을 통해 반복되었기에 구단의 시각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한 시즌에 10골 가량 넣어줄 수 있는 선수들은 얼마든지 100만 유로 미만으로 이탈리아 내에서도, 충분히 영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반값이나 1/3 값 미만으로 아프리카에서 데리고 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윤에 신경 쓰는 그런 구단들의 시각에 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축구 구단 운영이 자선사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소속팀이 없는 안정환 선수가 먼저 토리노 구단 측과 접촉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안정환의 경우 최소한 오구로와 비교해서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토리노의 공격자원들과 비교했을 때 안정환 선수가 우월한 면이 많은 면 많았지, 뒤처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토리노에 합류했을 때 주전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토리노의 미드필드진은 뛰어난 편이다.
특히 안정환 선수는 `마케팅`에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그는 일본 내의 식지 않는 `한류` 열기의 중심에 있는 대상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내 일본인들 사이에서 안정환의 인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기도 하다.
물론 문제는 이미 토리노 구단 측이 비 유럽계 용병으로 오구로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년에 1명`만 허용되는 비 유럽계 용병의 경우, 여러 가지 허점이 있기도 하다. 유권해석에 따라 자유계약이나 겨울 이적시장에 합류하는 방법도 찾으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2선 공격수가 몇 달째 소속팀이 없다는 것도 답답하고, 경기에 거의 출장하지 않는 비 유럽계 용병(오구로)을 데리고 있는 토리노 회장이 다른 아시아계 용병을 찾고 있다는 뉴스를 계속 접하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 지나갈 수밖에 없다. 내 본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이데일리]